가짜 생산성: 나는 AI에게 일을 시키고 있는가, AI가 나에게 일을 시키고 있는가

2026년 7월 8일읽음 0

요즘 특허청이 매우 바빠졌다는 말을 들었다. 많은 40대부터 70대 남성분들이 여러 가지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문서로 만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AI가 발전하면서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특별한 형식 없이 말하기만 해도 특허 제출 양식에 맞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동안 쌓여 있던 수많은 아이디어가 실제 특허 출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컴퓨터를 어느 정도 잘 다루던 사람들은 바이브 코딩을 통해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다양한 형태의 웹사이트나 앱으로 만들고 있다.

보통 40대부터 70대 정도가 되면 이미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기존 시스템의 불편한 점이나 개선하고 싶은 부분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생각했을 수도 있고, 최소한 이미 만들어진 서비스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필요한 도구나 웹사이트 정도는 한두 가지씩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그런 아이디어가 있어도 직접 만들 수 없었다. 개발자를 고용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자신이 프로그래밍을 배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AI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설명하면 웹사이트나 앱의 형태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AI를 활용해 웹사이트와 앱, 여러 가지 창작물을 만들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AI 사용 비용으로 단순히 월 20달러, 약 3만 원만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월 100달러, 약 15만 원 이상의 요금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비싼 요금제를 결제하고 나면 제공된 토큰을 모두 써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AI를 사용하는 것인지, 이미 결제한 AI를 사용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때도 있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개발을 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또 하나의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를 실행한다. 그리고 AI에게 “이런 기능을 개발해 달라”는 프롬프트를 작성한다.

여러 창에서 AI가 콘솔을 통해 동시에 작업하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여러 부서의 직원들을 데리고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화면마다 코드가 만들어지고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엄청나게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 된 것처럼 흐뭇해하며 바라보기도 한다. (반대로 이렇게 없으면 뭔가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정말 생산적인 일일까. 나는 앞으로도 운영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생산적인 기분만 느낄 수 있는 비싼 취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내가 AI에게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오히려 AI가 하는 일을 내가 계속 눈으로 검증하고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리뷰 의견과 수정 지시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돈을 지불하면서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검수하고, 그 과정을 통해 AI가 더 잘 일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몇 번 만들고 버린 프로젝트가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한 실험일 수도 있고 생각을 확인하기 위한 프로토타입일 수도 있다. 그런 프로젝트 역시 나름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실험을 완성된 제품이라고 생각하거나 동시에 실행 중인 프로젝트의 수를 나의 생산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터미널 창이 여러 개 열려 있고 AI가 계속 코드를 만들고 있다고 해서, 가치 있는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AI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속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속도 역시 높인다. 따라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만들어 놓고 나조차도 몇 번 사용한 뒤 버리는 프로젝트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가짜 생산성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사용되지 않고 유지보수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프로젝트를 계속 추가하는 것은 생산이라기보다 생산적인 기분을 소비하는 일에 가깝다.

AI 시대의 진짜 생산성은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로 판단할 수 없다. 무엇을 끝까지 완성했는지, 무엇이 실제로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는지, 무엇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이제는 생각나는 모든 것을 만드는 것보다, 수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정말 필요한 것을 선별해야 할 때이다. 완성도가 있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한 시스템에 시간과 역량을 집중해 끝까지 개발하고 유지해야 한다.

AI가 우리에게 수많은 손을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어떤 일을 시킬지 결정하는 머리와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더 많은 것을 만드는 가짜 생산성이 아니라, 가치 있는 하나를 선택하고 완성하여 지속시키는 진짜 생산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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